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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저녁 식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지혜/

김청진의 "a delicious dinner or not" 연작들은 실제 식사 후의 밥상을 찍은 사진에 기초한 작품들로, 작품에 붙여진 설명적인 제목들은 -언제 누구와 무슨 일로 어떠한 식사를 했는지- 사진의 기록적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감상에서 사진 한 장이라는 개념만 가지고는 떨쳐버릴 수 없는 회화적인 느낌은 '평면성'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의 화각과 카메라와 피사체간의 거리 등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평면성의 구현은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던 그 밥상들은 정말 바로 위에서, 공중부양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찍기 힘들었을 법한 것들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최소 열 장에서부터 많으면 백 장 정도까지의 사진을 찍어 조각 맞추기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든든한 저녁 식사 후에 테이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을 모습도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어떤 작품은 테이블 주위에 한 사람의 것으로추정되는 발들이 빙 둘러져 있다. 이렇게 '손'의 작업이 들어간 그의 사진 작품은 이미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지점에 놓여있다.

김청진의 이러한 작업들은 19세기 회화주의(pictorialism)를 표방했던 사진예술가들이 시도했던 작업들과도 상통하는 바 있지만, 사진의 '실재성'이 '예술성'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던 시대에 '회화 따라잡기'와도 같은 사진의 예술적 위상의 고양을 위한 회화주의자들의 몸부림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회화주의자들은 예술성을 위해사진에 회화적인 기법을 차용하고 내용면에서도 아카데믹하고 심미적인 주제를 선정하며, 사진의 고유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기록적이거나 재현적인 성질을 배제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 역시 회화적인 느낌을 위해 손으로 하는 작업을 더했다는 점에서는 이들과 비슷하다할 수 있겠으나, 상황과 사건에 대한 세밀한 기록을 놓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목의 상세함은 물론 작품의 피사체들 자체에서도 정체성을 드러낸다. 테이블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나 재떨이 등의 피사체들은 가히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요리와 상관없이 너무나도 한국적인 밥상을 구성하는 재미있는 기록이다. 작가의 단순한 객관적 사물의 재현을 위한 것이 아닌, '작품을 위한 재료'로 사용된 사진은 장인의 손재주 이상으로 개념이 중시되고 예술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현대 예술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양상에 발맞추어 가는 또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겠다.

그의 작품에는 밥상이 차려져있다. 게다가 이미 휩쓸고 지나간 자리이다. 왜 굳이 '식사 후'여야만 했냐는 질문에 작가는 '맛있고 화려한 밥상에의 미련'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잘 차려진 밥상에 놓인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골고루 다 먹어보고 싶지만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게 되었을 때의 안타까움, 미식가들의 공감대를 제대로 형성해 낼 것만 같은 솔직하고 재미있는 대답과 함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표현"으로 작품의 주제를 언급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즐거움이 가득한 풍요로운 자리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존재의 욕망과 행복한 순간이 지나간 후의 허무와 같은 것들을 작가는 즐거웠던 한 때, 함께한 저녁 식탁에서 숙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