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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규정한다.
마르크스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로 그 이전까지의 철학적 관념론과 단절하였다. 인간의 사회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생존이며, 그 근저의 욕망은 식욕에서 출발한다는 것, 즉 인간은 일차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노동과 생산을 하고 생산관계 속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청진의 작품 속에는 늘 한바탕 식사가 끝난 자신의 밥상이 등장한다. 꽈배기, 김밥, 붕어빵, 호두과자 등에서 출발한 그의 “먹기” 순례는 교내식당, 학교 앞 분식센터나 맥도날드 등을 거쳐 이태원의 브런치 레스토랑을 배회하고, 다시 성북동 한식집 ‘천하일미’나 중국집 ‘동문각’에 퍼질러 앉았다가 홀연히 헬싱키, 도쿄의 ‘맥도날드’를 여행하더니 ‘서울대학병원 102병동’에 와서 살짝 떨고 있다가 <자신의 여든다섯번째 생일을 위한 잔치에 살짝 서글픈 마음이 들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외할아버지의 생신잔치에서 눈치보며 밥 먹다가 플래쉬 펑펑 터뜨리며 찍은 잔치상>까지 와있다. 작가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은 이러한 그의 일상의 식사, 특히 식사 후의 지저분한 잔반이 남은 밥상의 처참한 모습들이다. 대게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한 흔적이지만 <괜찮아요! 즐거워요! 행복해요! 2009년 12월 24일 성북동 작업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얼론파티>처럼 식탁을 차리지도 않고 휴대용 가스랜지 위에서 혼자 후딱 해먹은 알 수 없는 먹거리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음식들은 레스토랑의 메뉴사진처럼 ‘음식’을 찍은 것이 아니라 허기를 채운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하루 하루의 식사행위가 실제로 그의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2. 제의식과 놀이
원래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종교를 포함한 모든 제의식의 출발이다. 그런데 김청진에게 자신의 작품의 근원으로서의 식사행위가 제의적인지 유희적인지는 솔직히 헛갈린다. 밥상을 정면에서 화면에 꽉 차게 보여주기 위해 한 컷 한 컷 사진을 찍어 다시 집요한 꼼꼼함으로 짜 맞춘 그 진지함을 보면 포만감을 느낀 만찬에 대한 예배 같기도 하고, 다 먹고 난 밥상에 남은 지저분한 흔적들이나 담배꽁초, 휴지 등의 소품들, 그리고 다소 의도적으로 붙였음이 확실한 코믹한 작품 제목들을 보면 일견 그의 태도가 가볍고 유희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 제목은 단순한 “제목”의 역할을 넘어서 보도사진의 “캡션”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
<포스트-잇 친구들과 연겨자를 입에 넣어 코로 넘어오는 겨자향에 소리를 지르며 먹은 동문각 라조기세트>를 보면 친한 친구들과오랜만에 맛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고, <전신마취 한다는 말에 떨리고 무서워 밥도 남겨버린 2009년 12월 4일 서울대학병원 102병동 21번 환자 김청진의 식판>을 보면 수술을 앞둔 환자의 착찹한 심정이 전해져 온다. 작품 제목이 우리가 보는 화면의 단도직입적이고 제3자적인 객관적 시선의 이미지에 모종의 나래티브의 닻을 내려주는 것이다. <비오는 베를린에서 사랑하는 유학생친구 신정은과 함께 즐긴 3유로짜리 브런치>, <기미정과 이인협이 사소한 이유로 크게 싸운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대군족발">에도,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추억과 미련이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긴, 호이징하(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 1938>에 따르면, 원초적인 제의식 조차도 놀이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그는 인류 문화의 원동력은 ‘호모 사피언스’의 사고본능이 아니라 인간의 ‘놀이 충동’이라고 보았고, 이 놀이 충동이야 말로 모든 창조의 씨앗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그의 저서 <놀이와 인간, 1958)에서 호이징하의 ‘호무 루덴스’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종교와 놀이가 둘 다 일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호이징하의 주장을 수정하여, 종교와 놀이는 일상과 분리되어 있되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고, 즉 자유를 근거로 생각해보면, 성스러움에서 벗어난 것이 일상이라면 다시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 놀이여서 성스러움과 놀이는 동일시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예술은 종교와 놀이 중 어느 편에 가까울까? 아마도 이 둘 다를 포용한 영역이 아닐까. 김청진 역시 이 둘의 경계를 들락거리면서 일상을, 삶을, 웃고 서글퍼하고 기념하고, 추억하면서 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청진은 늘 거대담론이 싫다고, 가볍게 일상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으며, 포만감과 허기짐 사이의 시계추 같은 허망한 욕망의 놀음에 대해 자신의 감각으로 농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욕망의 속성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견 가벼워보이는 김청진의 낙천주의는 우리나라에서 김청진 세대가 성장하면서 지레 질려버린, 의미과잉 시대에 대한 비판의 한 방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3.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김청진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영화적 기교를 최대한 배제한 징그러운 일상의 모습, 그 지루한 진부함 속에서 거듭 확인해야 하는 우리네의 치졸한 위선과, 위악과, 사소한 허풍, 의식적 무의식적 자포포기가 가져다주는 잔인한 통속성. 아마도 이런 것이, “보고 나오면 되게 기분이 나쁜데 그래도 자꾸 생각해보게 하는” 홍상수 일상의 독특한 지점이리라. 그런데 나는 김청진의 작품을 보면서 오히려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떠올렸다. 이 영화는 자신을 쥐라고 생각해서 무만 자시다가 잡혀가신 할머니 사건을 겪으며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기로 한 소녀 영군이와, “안티 쏘셜”이란 병명을 받았지만 실은 자신이 점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 자꾸 타인을 관찰하면서 타인의 ‘성격’을 훔치게 된 “안티 소멸” 일순이가 ‘멋진? 신세계-정신병원’에서 만나면서 펼쳐진다. 영군이는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고, 사이보그의 칠거지악, 즉 겸손함, 동정심, 죄책감, 슬퍼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망설임, 설레임, 쓸데없는 공상을 극도로 경계한다. 영군에게서 마침내 동정심을 훔친 일순이가 영군이를 위해서 밥을 전기에너지로 바꾸어주는 ‘라이스 메가트론’을 만들어 주고, 일억메가의 에너지를 얻은 영군의 상상적인(imaginary) 복수가 펼쳐지기도 하는, 만화같은, 다분히 “유치”를 가장한 로맨틱 판타지이다. 김청진의 세계가 로맨틱하지도 않고, 더구나 판타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메마른 카메라의 시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맨틱 코메디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작품세계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러니까, 김청진이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 역시 현실과 판타지 간의 ‘사이 존재’라고 할 수 있을 일순이 어떻게든 영군을 살려보려고 “라이스 메가트론”을 발명하였듯이, 우리에게 먹으라고, 더 나아가 함께 먹자고, 함께 놀자고 짐짓 모르는 척, 관란자의 등에 기계장치를 그리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먹자”, “함께 놀자”는 얘기가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왜 아무도 함께 먹자거나 함께 놀자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 영화 속의 할머니가 잡혀가시면서 과장된 큰 목소리로 “존재의 목적은 ~야”라고 외쳤는데 끝내 “~” 부분을 듣지 못한 영군이는 할머니의 틀니를 끼고 존재의 목적에 대해 계속 궁금해하였다. 문제는 “이빨”인지도 모르겠는데, 영군에게 “이빨”은 할머니의 틀니로만 가능했다. 하지만 김청진은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자, 살아남자, 삶의 허망함을 차라리 즐기자.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의 전쟁터에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호모 루덴스의 통찰을 함께 나누는 일일 터이다.
1.What you eat is what you are.
Karl Marx cut himself off from previous philosophical idealism by saying that it is not our consciousness that determines our existence, but our social existence determines our consciousness. Survival is the most important goal in human social activity, and the desire for survival begins from hunger. That is, humans primarily step into labor and relations of production in order to “eat and live.”

The dinner tables where greedy eating has already finished constantly appear in Cheongjin Keem’s works. His “eating” pilgrimage starts from a twisted doughnut, gimbap (dried seaweed rolls), bung-eo-ppang(fish shaped bread with red beans), hodu-gwaja (small walnut flavored cake in the size of a walnut), continues on to school cafeteria, bunsik center (small restaurant in Korea in which inexpensive dishes are sold) and McDonald’s in front of school. He hovers around a brunch restaurant in Itaewon, comes back to settle down at the Korean restaurant ‘Cheonhailmee’ or Chinese restaurant ‘Dongmoonkak’ in Seonbuk-dong, then suddenly travels to McDonald’s in Helsinki and Tokyo, slightly trembling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ward 102’, and finally arrives in front of .

The artist presents viewers disastrous scenes of tables with dirty leftovers after his daily meals. Most of the images are from dinners he had with others, but some of them are about some hard-to-tell food he quickly cooked for himself on a portable gas burner without even setting the table as in . His food are not the ‘food’ themselves as in fancy menu pictures of a restaurant, but ‘remaining things’ after satisfying one’s hunger. Above all, the everyday behavior of eating is creating his art one at a time.

2.Ritual and play
Indeed, all kinds of rituals including religion begin by sharing food. However, to be honest, it is confusing whether the behavior of eating, as Keem’s artistic motivation, is a ritual or play. His seriousness for taking pictures one after another and meticulously putting them together to fit in tightly on the screen allows us to think that his works are worshiping the supper that brought him satiety. On the other hand, the messy traces on tables after eating,
props like cigarette butts or napkins, and comical titles which seem to be intentionally given, make his attitude somewhat light and playful. Interestingly, his titles act not only as the “title”, but also as “caption” in news photos. People can imagine him joyously eating delicious food with his friends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while looking at . Mixed feeling of a patient touches viewers’ heart when staring at . These titles give narratives to the straightforward images with the third eye objective view. As in <3 Euro brunch in raining Berlin with my loved friend Jeongeun Shin> and <“Daegoon Pork Hocks” in Samseon-dong, Seongbuk-gu where Meejeong Kee and Inhyup Lee had huge argument for a very trivial reason>, his works contain reminiscences and lingering feelings toward the past that would never come back.

In fact, according to Johan Huizinga in , basic rituals could also be included in the notion of play. The author insisted that the motivational power for human culture is not the instinct to think for ‘Homo Sapiens’, but the ‘desire toplay’ of humans, and the desire to play is the seeds for all kinds of creations. Additionally, while accepting the notion of ‘Homo Rudens’, in , Roger Caillois tries to modify Huizinga’s suggestion that religion and play are both isolated from everyday life. Caillois asserts that religion and play may be isolated from everyday life, but they are located at the opposite side of the spectrum of which the everyday life locates in the center. That is, concerning the liberty as our reason, if daily life is where we arrive after escaping from the sacred, play comes after breaking away from the daily life, so that the sacred and play cannot be treated the same. Then, which side, religion or play, would art be closer? Art should be placed in which both areas could be embraced. Keem, as well, is playing around on the boundary of the two while laughing, crying, commemorating, and remembering the ordinary scenes of life. Keem says that he records daily life in a light way because he dislikes the meta-discourse, and that he frolics through his senses while playing with vain desires like a pendulum between satiety and hunger. The main attribute of desire is that it could never be satisfied until death. Nevertheless, Keem’s optimism, which seems very light at a glance, may be a way of criticizing the era of excessive meanings of which his generation has hastily become disgusted in this country.

3. I’m a cyborg, but that’s OK
Keem likes Sangsoo Hong’s movies. He likes elements that are only found in Hong’s films: loathsome sights of everyday life created by excluding technical skills of film, our shameful hypocrisy and trivial brag which should be confirmed over and over in the tedious staleness, and cruel conventionality resulting from both conscious and unconscious despair. These maybe the distinctive factors of Hong’s ordinariness that make us “feel awkward but repeatedly think after watching his movies”. Yet, instead, the movie by Chan-wook Park came across my mind when I first saw Keem’s works. The film takes place in the ‘Brave New World – mental hospital’ where Young-goon and Il-sun meet each other. Young-goon is a girl who decides to become a cyborg herself after experiencing her grandmother institutionalized for delusions of being a mouse, and Il-sun is an ‘anti-social’ boy who is actually afraid of himself shrinking into a dot and tries to steal others’ personalities by observing them. Young-goon cannot eat because she believes herself to be a cyborg, and is extremely cautious about the seven vices to avoid for a cyborg, which are: modesty, sympathy, guiltiness, sadness, appreciation, hesitation, thrill, and useless fantasy. The movie is a good deal of a romantic fantasy disguised in ‘childish’ atmosphere where Il-sun, who finally steals sympathy from Young-goon, invents ‘rice-megatron’ to convert rice into electricity, and Young-goon’s imaginary revenge begins after she obtains one-hundred-million-mega-energy.

Although Keem’s world is neither romantic, nor related to such fantasy with his dry view of camera, that his works remind us of a romantic comedy is a very interesting point in his art world. As Il-sun, who could be considered as a ‘connective being’ between reality and fantasy, creates the ‘rice-megatron’ to save Young-goon’s life, Keem may have wanted to say, though he could not, that we should ‘eat’. He could be drawing a machine on our back, pretending as if he does not know anything, so that we could eat and play together. Why can no one simply ask “let’s eat,” or “let’s play” although they are not the so much immense phrases to say? In the movie, when the grandmother was taken away she cried out with huge exaggerated voice “the purpose of our existence is ~”, but Young-goon was never able to catch the “~” part. She continuously wonders about her purpose of existence, wearing her grandmother’s false teeth. The problem is the “teeth” but Youngoon’s “teeth” was possible only with her grandmother’s false teeth. Perhaps, Keem wants to say: but still, nevertheless, let us eat, survive, and rather enjoy this futility of life. Being an artist in the fierce battlefield of capitalistic competition possibly means sharing the insights of Homo Rudens.